기타

(미오슬레) 범블비 AU

책과 집 2023. 4. 12. 02:19

그 아이는 항상 비릿한 쇠냄새를 풍겼다. 하루종일 차고에 처박혀 기계를 다룰 때에는 닫힌 문 너머로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엔진 소리와 커다란 진동음이 차고 밖까지 느껴져왔다. 먼지와 매캐한 냄새가 가득한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필요한 부품을 사러 가끔 집 밖으로 나오는 너와 마주할 때마다 흘깃 차고를 훑어보며 넌지시 안에서 무얼 하냐 물어보았지만, 너는 언제나 으레 그렇듯이 똑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냥 차를 고칠 뿐이라고.

저 멀리 자전거를 타고 보수되지 않아 군데군데 부서지고 망가진 도로를 덜컹거리며 질주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금방 갔다올 생각인 건지 웬일로 차고 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미오리네는 잠시 고민을 하다 한 번 더 뒤를 돌아 슬레타가 시야에서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차고의 셔터를 위로 올렸다. 잔뜩 녹슬어 뻑뻑한 문은 끼긱거리는 소름끼치는 소리만 낼 뿐 쉽사리 올라가지 않았다.

겨우겨우 몸을 굽히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열고는 거의 기어가듯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건 파란색과 흰 색이 섞인 오래된 차였다. 딱 보기에도, 아주 예전에 만들어진 구형 모델이었다. 지금껏 이걸 고치고 있었던 건가? 기계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없는 편이었으나 자신이 보기에도 이런 건 고친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 쓸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그냥 버려지는 게 아쉬워 어디서 중고로 받아오고는 고쳐 쓰려고 지금까지 수리하고 있었던 건가 싶어 미오리네는 차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자세히 보니 여러 군데 긁히고 흙먼지가 묻어있기는 했지만 크게 칠이 벗겨진 곳도 없고 외관상으로는 꽤 멀쩡해보였다. 못 탄다 하더라도 깨끗하게 관리했으니 그냥 관상용으로 쓸 수도 있을 법했다.

이게 뭐라고 나한테까지 비밀로 하고 자꾸 날 피해다닌 건지. 괜스레 질투가 나 차를 가볍게 발로 툭, 쳤다. 슬레타가 본다면 분명 난리가 나겠지. 하지만 그동안 말도 제대로 안 해준 채 자신을 속 썩였으니 이 정도는 용서해 줄 터이다. 볼 장 다 봤으니 이제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차고를 빠져나가야겠다 싶어 다시 문으로 걸음을 옮겨 허리를 숙였다. 빌어먹을, 기계는 그렇게 잘 만지면서 문은 왜 이 따위로 방치해 둔 거야? 몸을 거의 바닥에 밀착시켜 엎드려서 나가려는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란 기계 작동음이 들렸다.

설마 차 타이어를 발로 찼다고 고장이 나거나 시동이 걸린 건 아닐 텐데. 불안한 마음에 다시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자 마주한 건 자동차가 아닌 커다란 형태의 로봇이었다. 사람처럼 머리가 있고, 두 팔과 몸통이 있고, 두 다리로 바닥을 지탱하고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로봇.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눈을 마주치다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동차는 온데간데도 없고 오직 자신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로봇 만이 서 있었다.

설마, 그럼, 저게... 방금 그 차라는 거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따금씩 웅웅 거리는 기계음만 내며 자신을 쳐다보는 로봇을 보며 미오리네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다 쿵, 하고 차고 셔터에 등을 부딪혔다. 아, 젠장. 아까 그냥 활짝 열어놓을 걸.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킨 채 허리를 굽혀 나가려는 순간 로봇이 한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붙잡으려는 건지 쿵쿵 거리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그것을 보며 미오리네는 반 쯤 패닉에 빠진 채 얼어붙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정신없이 부풀어올라 머릿속을 가득채웠지만 그마저도 원망스런 몸뚱아리는 따라주지 않고 여전히 굳어있을 뿐이었다. 코 앞까지 가까워진 로봇이 자신을 향해 팔을 뻗자 미오리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여기서 뭐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눈을 뜨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슬레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용기를 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로봇은 손을 뻗어 차고 셔터를 올리고 있었고 그 틈으로 슬레타가 들어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방금 그건 자신을 해하려는 게 아니라 문을 열어주려고 했던 건가. 맥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긴 한숨을 쉬는 미오리네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슬레타는 로봇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변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에어리얼! 마치 말을 알아듣는 듯 끙끙거리는 기계 소리를 짧게 두어 번 내며 차고 안으로 서서히 뒷걸음질 친 로봇은 억울하다는 듯 미오리네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항변했다.

미오리네 씨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려던 것 뿐이었다고?

그래도 너무 안일했어! 만약 미오리네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쩌려고? 널 쫓던 군인이 이 차고에 들어왔다면 진작에 잡혀갔을 거야.

다시는 그러지 마. 한참을 걱정 섞인 말투로 다그치더니 이내 자신의 키만한 다리를 두 팔로 폭 감싸안으며 슬레타는 작게 웅얼거렸다. 그런 슬레타를 보며 안절부절 못 하던 에어리얼은 천천히 팔을 들어올려 머리보다도 큰 커다란 손으로 슬레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에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싶어 손가락을 살짝 깨물자 생생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미오리네는 자신이 아직 현실에 있음을 알았다. 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미오리네는 슬레타의 시선을 끈 뒤 한 쪽 손으로 에어리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뭔지 설명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아, 이 아이요? 제 새 가족이에요! 이름은 에어리얼이고, 자신의 고향에서 전쟁이 벌어져서 싸우다가 지구로 잠시 도망쳤대요. 여기서도 군인에게 들켜 도망치다가 부서지고 고장난 걸 제가 데려와서 고쳐줬어요.“

그치, 에어리얼? 헤헤 웃으며 서로 눈을 마주치는 둘을 보고 미오리네는 대체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어 눈을 두 세번 꿈벅였다. 분명히 내 앞에 존재하는 걸 보면 마냥 헛소리는 아닌데. 슬레타가 아무리 기계를 잘 만진다고 해도 저런 고성능의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고.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건가 싶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일부러 내게 말을 안 했던 건가 싶어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말은 해줬어야지. 내가 널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고.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살짝 따지듯이 묻자 그제서야 실수한 걸 깨달은 슬레타가 황급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 일부러 감춘 건 아니었어요. (일부러? 그동안 날 피해다닌 건 뭔데? 미오리네가 중간에 끼어들어 외쳤다.) 무, 물론 제가 감춘 건 맞지만, 들어보니 심각한 일인 거 같아서... 미오리네 씨에게 혹시 피해가 가면 어, 어떡하지 싶어서 그동안 피해다녔어요. 죄, 죄송해요, 미오리네 씨... 버벅거리며 연신 눈을 피한 채 변명하는 슬레타를 보며 화가 사그라드는 걸 느낀 미오리네는 앞으로는 제게 숨기지 말고 다 털어놓으라며 슬레타의 앞머리를 손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여전히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에어리얼을 잠깐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돌리고는 슬레타를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외계에서 온 이 로봇을 쫓는 (에어리얼이에요! 슬레타가 외쳤다.) 아, 그래. 에어리얼을 쫓는 세력이 있고, 또 이 지구에 불시착하면서 그 모습을 군인에게 들켜서 군대에도 쫓기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성대와 같은 부품이 고장나서 말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부품이 고장난 건 고칠 수 있지 않나 싶어 슬레타를 바라보니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래도 보통의 차랑은 구조가 달라 지구에 있는 부품으로는 고치기가 힘들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허. 갑작스럽게 저 머나먼 우주 바깥에 사는 외계 종족의 전쟁에 휘말렸다고 생각하니 두통이 다시 이는 거 같았다. 그것보다 슬레타 얘는 딱 봐도 수상해보이는 이 로봇을 냉큼 주워온 거야? 이걸 또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가르쳐줘야 되나 싶어 미오리네는 이마를 부여잡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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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슬레 에어슬레 범블비AU 하면 재밌겠다 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담을 내용이 많고 그러면 글이 끝도 없이 길어질 거 같아서 힘들어서 걍 여기서 끝냈음

슬레타 현대 AU하면 하루종일 차고에 처박혀서 공구함 들고 기계 만지작거리며 놀 거 같음 원작에서는 메카닉과가 아니고 파일럿과지만 파일럿도 자기 기체 정도는 관리할 줄 알아야 하니까 기계에 대해 빠삭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