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미오슬레에리) 수사관au 2

책과 집 2023. 11. 18. 00:14

수사관au1에서 이어짐
개연성 좆됨
폭력적인 묘사 주의

실제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법이 어떠한 형태로 되어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판타지로 생각해주세요...



미오슬레 그렇게 첫 관계하고 난 뒤로는 둘이 틈만 나면 붙어먹을 듯ㅋㅋㅋㅋ 야외에서 급하게 지퍼만 내리고 하는 것도 좋고 둘 다 비번인 날 (미오리네는 사실상 휴일이 없겠지만...) 느긋하게 하는 것도 좋음 그렇게 평화로운 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으면 좋겠다 원래 태풍이 오기 전이 가장 고요한 법이니까...

상부에서 직접 지원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지 한동안은 옆마을에서 물자 강탈하러 찾아오지도 않고 강도들도 알아서 피해갔는데 배치한 인원도 1명이고 심지어 적절한 무기도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악명 높은 약탈 집단이 무리를 이끌고 야밤에 찾아왔음. 그동안 별 다른 침략을 하지 않았으니 다들 안심한 상태라 해이해져 있을 거고 자원이 부족해 가로등도 대부분 고장났고 밤에 불도 그다지 키지 못 하는 마을이라면 어두울 때 공격하면 순식간에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강행한 것이었음. 여느 날과 같이 마을은 어두컴컴하고 경찰서의 불만 켜져있던 날, 미오리네는 창문 너머로 들리는 희미한 발소리를 인지했음. 처음에는 야간순찰 도는 자경대원인가 했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묵직하고 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바로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깨달았음. 조용히 경찰서 불을 끄고 혹시 몰라 예비 탄창까지 허리 주머니에 챙긴 뒤 글록을 당장이라도 쏠 수 있게 잠금장치까지 풀어놓고는 천천히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문을 열고 나왔음. 소리의 근원지로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가자 저 앞에 나무로 만든 방벽 위에 올라 가림막 뒤에 웅크려 숨어있는 인영이 보였음.

혹시나 침입자 일까봐 총구를 그림자로 향하고는 사주경계하며 걸어가자 인영이 위에서 조그만 목소리로 미오리네의 이름을 불렀음. “미오리네 씨.” 익숙한 목소리에 바로 총구를 내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뒤 몸을 숙이고 목소리의 주인 곁에 붙은 미오리네는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음. 슬레타가 조곤거리며 예전부터 우리 마을을 자주 침략하던 무리라고, 한동안은 잠잠하더니 다시 활동을 시작한 거 같다고 설명하자 에리크트가 검지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음.

“고개 숙여. 지금 저놈들 방심하고 있으니까 기회를 봐서 한 번에 덮칠 거야. 우두머리부터 잡는다.”

나무로 만든 방벽 주위를 서성이며 들어갈 입구를 찾는 카키 색의 바지를 입은 덩치 큰 사람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에리가 말했음. 어차피 오합지졸 개떼들이니 리더만 잡으면 돼. 그러면 나머지는 소탕하기 훨씬 쉬울 테니까. 슬레타가 다른 곳에서 시선을 끄는 사이 내가 붙잡는다. 슬레타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미오리네가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항의했음.

“잠깐, 그건 너무 위험해. 족히 15명은 되어 보이는데 자칫하면 슬레타가 다칠 수도 있어. 차라리 내가 유인하겠어. 다른 대원들은 어디 있지?”
“이미 주변 건물에 매복 중이야. 내가 신호를 주는 순간 습격을 시작할 거고, 토끼몰이 형식으로 마을의 벽 구석까지 밀어넣은 뒤 전부 처리할 거야. 다시는 이곳에 발조차 들일 수 없도록.”

전부 쏘아 죽이겠다는 말로 들렸지만 미오리네는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었음. 바로 코앞까지 총을 든 강도 무리가 다가와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찰이니 뭐니 하며 법 운운해봤자 먹힐 리는 만무했으니까. 차라리 에리 말대로 리더부터 잡고 구석에 잔당들을 몰아넣었을 때 한 번에 체포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음.

“범인이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상황이니 최대한 인명피해 없이 제압하라는 말은 안 하겠지만, 그래도 무의미한 살상은 하지마. 가능하면 다리나 손을 쏴서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줘.”

물론 미오리네도 이 말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건 알았음. 대테러 진압 부대가 현장에 돌입할 때 범죄자들의 사정을 생각하며 진압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지금 이 마을에서 경찰은 자신 하나 뿐이고 아무리 자경단이라 하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민간인들 천지였음. 자칫하면 우리쪽 피해도 만만치 않게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음. 더군다나 지금은 제대로 된 영장 발부도 안 된 상태고,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허가된 진압도 아니며 범인들 또한 사람의 목숨을 앗거나 인질극을 할 목적으로 온 자들인지 아니면 그저 위협만 하고 물자를 뺏어갈 목적으로 온 것인지 불확실한 상태였기에 미오리네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음. 한 쪽 집단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타인을 살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미오리네의 입장을 이미 아는지 에리크트가 빈정거리며 픽 비웃었음. 경찰 끄나풀 아니랄까봐 쓸데없는 동정심이 참 많아. 몸도 더럽게 사리고. 그런 같잖은 동정심이 왜 우리한테는 그동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참 모르겠어. 그치? 대놓고 자신을 긁는 말에 미오리네가 인상을 쓰며 바라보자 에리가 가볍게 무시하고는 고갯짓을 하며 슬레타를 불렀음. 가자. 애초부터 저 놈 도움 따위는 필요도 없었어.

슬레타가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주저하자 에리가 인상을 쓰며 다시 한 번 훽 고갯짓을 했음. “미안해요, 미오리네 씨. 그래도 노력해 볼게요.” 언니가 마을을 지키는 일에는 많이 민감해서... 이번에는 미오리네 씨가 이해해줘요. 슬레타가 속삭이고는 서둘러 에리의 지시대로 이목을 끌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잰걸음으로 뛰어가자 미오리네는 잠시 고민했음. 대놓고 맞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시선을 끌다 빠져나간다고 했지만, 저 많은 수를 상대로 그러기는 힘들어. 만에 하나 포위되면? 인질이 잡히면 불리해지는 건 우리야. 꼴을 보아하니 에리크트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고. 슬레타는... 착한 아이니 최대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해결하려 들겠지. 한숨을 후 내쉬고 미오리네는 서둘러 슬레타의 뒤꽁무니를 쫓아갔음. 다른 대원들이 근처에 매복해 있다고 했으니 크게 소동을 벌일 필요도 없어. 딱 미끼 역할만 하고 빠지면 되는 거야.

서둘러 걸음을 옮기고 있자 저 멀리 사다리를 타고 방벽을 내려가는 슬레타가 보였음. “슬레타,” 땅으로 내려와 방벽을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한 슬레타의 행동에 미오리네가 의문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자 시선을 느낀 슬레타가 설명했음. “여기, 옆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오래전에 쓰이다 버려진 건물이라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꽤 떨어진 곳이고요. 예전에는 학교였다는데, 지금은 뭐. 보시다시피 그저 폐허네요. 그래도 벽도 콘크리트로 지어졌고, 총알도 어느정도 막아줄테니 쓸만할 거예요. 이곳에서 위협사격을 가해 저 사람들이 우리가 이 건물에 숨어있다고 생각하게 만들 거예요. 그러면 저쪽은 포위하기 위해 몇 무리로 나누어져 건물을 둘러싸고 천천히 수색을 시작하겠죠. 그때 언니랑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나타나 건물 안으로 전부 몰아넣을 거예요.”

꽤 오랫동안 이 마을에 찾아오지 못했으니 함부로 인원을 나눠 마을 안에 침입하지는 못 할 거예요. 그동안 어떻게 방비하고 인력을 재구성 했는지 무엇하나 파악하지 못했을 테니까 신중하게 행동하려 들겠죠. 방벽도 그동안 틈틈이 재정비 했으니 괜히 시간 잡아먹자고 쓸데없이 부수거나 그러지도 않을 거고. 벽을 부수느니 차라리 어딘가에 있을 출입문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슬레타가 말을 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더듬더듬 무언가를 찾았음. 지금은 무얼 찾고 있냐는 물음에 슬레타는 짧게 답했음.

“문이요.”

문 없이 완전히 방벽을 쌓아버리면 저희도 갇히는 셈이 되잖아요. 미오리네 씨가 처음 이 마을에 찾아왔을 때는 정문이 어디인지 확연히 알 수 있었지만, 에리가 어디가 어딘지 외부에서 구별하기 힘들게 만들어야 방어에 용이하다면서 정문도 없애버리고 전부 똑같이 막아버렸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곳곳에 문을 숨겨놓았지요. 에리는 바로 찾아내던데, 어떻게 그러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정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숨겨져 있거든요. 손으로 쓸다보면 길게 직사각형으로 홈이 파인 곳이 있는데 그러면 대게 문일 거예요. 가령, 이런... “아, 찾았다.” 슬레타가 잠시 동태를 살피더니 천천히 묵중한 몸짓으로 문을 밀어 열었음.

“사방이 막혀있는데 뚫린 곳이 하나 있다면 그곳으로 전부 모여들겠죠. 일단 여기서 소리를 내 문의 위치를 알리고, 그 다음 학교에서 교전하기 시작할 거예요. 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 건물로 쏠리도록요. 으음, 오랜만의 작전이라 잘 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에리가 있으니까 성공할 거예요. 언니는 정말로 멋지고 용감하니까요.”

에리크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말에 미오리네는 쓴맛을 느꼈음. 지금까지 서로 신용이나 믿음은 어느정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작전에 들어서니 네가 의지하는 건 온통 네 언니 뿐이로구나. 지금까지 자질구레한 사건 말고는 이렇다 할 큰 사건도 없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건만 미오리네는 그래도 속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불편함을 떨쳐낼 수 없었음. 상관없어, 어찌되었건 지금 슬레타의 곁을 지켜주는 건 나니까. 생사가 오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게 누구인지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면 그 언니에 대한 빌어먹을 애착심도 좀 사그러 들겠지. 미오리네가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집어넣어 범인들의 행동거지를 살폈음.

하늘로 총을 쏴 경고사격도 안 하고, 무작정 방벽을 오르려 시도하지도 않고 계속 문을 찾고 있는 걸 보니 딱히 이렇다 할 작전은 없는 건가? 일단 사람들부터 찾아내 협박하여 물자만 탈취하고 도망칠 생각이었나 본데. 눈가를 찌푸려 초점을 한데 모아 집중해 살펴보니 총도 전부 오래되고 낡은 구식 총이었음. 장총은 끽해야 우두머리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권총이라. 그다지 싸울 의지도 없어뵈는데, 토끼 몰이를 할 필요가 있나? 어쩌면 쓸데없이 교전하지 않고 끝낼 수 있을지도 몰라. 위협만 잘 하면 별 피해없이 이 사태가 종료될 수 있어. 미오리네가 슬레타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슬레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난감한 얼굴로 말했음.

“그래도 리더는 에리라서 제 마음대로 작전을 변경할 수가 없어요. ...일단 건물로 유인을 하되 최대한 사람을 피해 바닥에 쏘며 응전하며 버틴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언니도 틀림없이 알아줄 거예요. 제, 제가 사람을 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작전을 바꿀지도 몰라요.”

네 언니가 과연 그럴까? 그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구태여 꺼내지는 않은 채 알았다고 짧게 대답하고는 미오리네는 문 바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두어번 발포했음. 커다란 망치로 종을 거쎄게 두드린 듯 한 귀가 찢어지는 발포음이 온 사방을 울리며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고 곧 저 멀리 여러명의 발걸음이 들리기 시작했음. “가자, 슬레타.” 슬레타가 네, 라고 답하고는 둘은 빠르게 학교로 달려갔음. 1층 창문은 요새마냥 전부 나무 판자로 막혀있고 정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 건물 옆에 위치한 비상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해야 했음. 작은 마을인 만큼 건물도 3층이 끝이었기에 맨 끝층까지 계단을 타고 달려가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 몇 명이 숨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도록 몸을 숙여 보이지 않게 감춘 뒤 복도를 이리저리 뛰다니며 총격전을 벌이고 있자 곧 또 다른 총소리가 건물 밖에서 울려퍼졌음.

“에리크트예요!”

범인들을 전부 학교 내부로 몰아넣어버리겠다는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미오리네와 슬레타는 서둘러 뒷문을 통해 학교를 빠져나왔음. 자칫하면 아군의 눈먼 총알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기에 미끼역인 둘은 이제 구석에 숨어 이 상황이 정리되기 만을 기다리면 되었음. 풀숲에 숨어 쥐죽은 듯 조용히 소란을 듣고 있자 시끄러운 총소리 사이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음. 낯선 목소리에 미오리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자 곧 그 소리의 주인이 범인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깨달았음.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대화라기보다는 한 쪽의 일방적인 호소에 가까웠음. 불안한 느낌에 미오리네가 수풀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건물벽에 등을 기댄 채 소란의 근원지로 느릿하게 다가갔음. 여전히 풀숲에 숨어있던 슬레타는 언니의 말을 따를지 미오리네를 쫓아갈지 갈팡질팡하며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다가 결국 미오리네를 쫓아갔음.

“제발, 쏘지마! 항복할게, 봐, 전부 총을 내려놨어. 허튼 수작 부리지 못하도록 총도 전부 발로 차 너희들 쪽으로 밀어놨어. 잠깐, 잠깐잠깐잠깐, 내 말 좀 들어봐. 그동안 마을을 침략한 건 미안해. 우리도 살아야 했어.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랬던 거야.”

우두머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 위로 들어올린 채 누군가에게 사정하고 있었음. 작열하는 손전등 빛에 눈가를 찌푸린 채 간청받는 대상을 보니 에리크트가 총구를 들이민 채 가만히 서있었음. 성공적으로 몰이에 성공한 건지 우두머리 뒤로 다른 사람들이 양손을 깍지 끼고 머리 뒤에 올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가쁘게 호흡하며 떨고 있었음. 개중 몇 몇은 총을 맞은 건지 하반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앉은 자리에서 땅바닥을 검붉게 적시고 있었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옳지 않은 짓이란 거 알아. 하지만,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거나 한 적은 없었잖아! 제발, 이번 한 번만 놓아줘.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지 않을게. 시, 식량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조금이나마 줄 수 있어. 제발, 제발 부탁이야.”

손전등의 빛 덕분에 확연하게 표정이 보이는 우두머리와 다르게 조명을 뒤로 하고 어둠 속에 서 있는 에리크트의 표정은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음. 이만하면 됐다고, 더 이상의 무의미한 싸움은 중지하고 이제 전부 포박해 경찰서에 인계해 재판에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오리네가 그만하라고 말하며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탕 하는 귀가 찢어질 듯 한 소리가 들렸음.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우두머리의 머리에 구멍이 생기더니 총알의 압력에 그대로 뒤통수가 날아가고는 이내 생기 잃은 몸이 앞으로 툭 고꾸라졌음. 지금 공격할 의사가 없던 사람을 사격한 거야? 심지어 항복한다 외치며 흉기를 전부 내려놓고, 무방비 상태로 있던 사람을? 있을 수 없는 일에 답지 않게 몸이 굳어있던 미오리네가 간신히 입을 열어 에리에게 무어라 외치려는 순간 에리크트가 작게 말했음.

“쏴버려.”

우뢰와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지며 무릎을 꿇고 있던 자들이 픽 하고 하나둘 땅바닥에 쓰러졌음.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어졌던 총탄 소리가 잦아들자 사방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음. 방금까지 살려달라 요청하던 자들은 지금은 모두 말을 잃고 자신의 피를 뒤집어 쓴 채 흙바닥 위를 구르고 있었음. 항복한다면서 자신에게 손수 보낸 장총을 발 끝으로 툭 건들고는 바닥에 엎어져 싸늘하게 식어가는 우두머리를 물끄러니 내려다보던 에리는 별 감정없는 말투로 다른 대원에게 전부 치우라고 말했음. 시체가 썩으면 마을에 병이 돌 수 있으니 전부 땅에 묻어놔.

“무기는 전부 수거해 병고에 가져다 놔. 쓸만해 보이는 것들도 있으면 챙겨두고.”

”에리크트!!”

미오리네가 건물 뒷편에서 뛰쳐나오며 성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에리크트는 허, 하고 짧게 한숨을 쉬고는 소리의 주인을 바라봤음. 수사관이라면 일하면서 이보다 더한 꼴은 지겹도록 봐왔을 텐데 왜 이리 소란을 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미오리네가 으르렁거리며 노색 어린 얼굴로 말했음.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내가 네가 하라마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나?”
“문제가 몇 배로 커졌어! 이건 정당방위가 아니야, 그냥 학살이지!”
“뭐라고 다그치지마. 어찌됐든 상대방도 우리에게 사격했으니까.”

뒤늦게 쫓아온 슬레타가 서로 아웅거리며 싸우는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는 여러번 그만하라 일렀지만 그마저도 곧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에 묻혀 사라졌음. 언니를 말려야 할지 미오리네 씨를 말려야 할지 선택하지도 못 한 채 중간에 서서 허둥지둥하며 당황하는 슬레타를 두고 둘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갔음.

“빌어먹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쏴죽였어. 이게 가만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어!”
“그래도 이젠 더 이상 우리 마을에 찾아오지 못하겠지. 그 누구도 말이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는 미오리네는 주변을 둘러봤음. 자신은 의사가 아니니 함부로 사망 선고를 내릴 수는 없지만, 이건 누가 봐도 진작에 숨이 끊어진 상태였음. 이제와서 치료해봤자 살릴 수도 없을 테고. 이걸 상부에 뭐라고 보고하지? 무력 충돌이 있었고 그 때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일 뿐이라고? 그렇다기에는 상황이 너무 일방적인 학살이야. 저쪽이 먼저 위협적으로 나왔기에 대응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먼저 방아쇠를 당긴 건 우리였어. 과거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던 간에, 일단 지금 이 상황은 명백히 우리 쪽이 불리해. 만약 죽이지 않았더라면, 하다못해 우두머리만 죽고 나머지는 살려뒀더라면...

사건을 어떻게 갈무리해 보고서를 올려야 할지 머리를 핑핑 돌리며 시체들을 수습하고 있자 저 멀리 건너편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음. 연달아 울리는 총소리에 마을 주민들이 잠에서 깨어 소란의 근원지를 찾아 온 거였음. 소음기를 장착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시끄러웠겠지. 제기랄, 이 상황을 보면 분명히 난리가 날 텐데. 지원 받은 게 없으니 최소한의 폴리스라인을 설치할 수도 없고 군중을 통제할 인력도 없으니 미오리네는 미칠 지경이었음. 잠에서 막 깬 듯 간단한 외투만 걸쳐입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곧 널부러진 시체들과 무기를 들고 조용히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경단을 보며 헉 소리를 냈음. 미오리네는 잠긴 목을 여러번 헛기침하며 풀어주고는 사람들에게 말했음.

“보시다시피 외부 세력의 침입이 있었습니다. 전원 사살하여 상황은 완전히 종료된 상태이며, 시신은 경찰에게 인계되어 이 사건이 일어난 경위가 무엇이며 정확한 피해는 어느정도인지 조사하러 상부에서 곧 지원이 올 겁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함부로 외부에 유출하지 마시고 수사관이 협조를 요청하기 전까진 당분간은 함구해주시길 바랍니다.”

슬레타에게 부탁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는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 상황을 찍으려고 하자 에리크트가 미오리네의 카메라를 그대로 뺏어버렸음.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역정을 내자 에리가 비죽거리며 말했음. “네가 이 일을 상부에 말하려는 걸 내가 가만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해?” 핸드폰을 부술까 짐짓 고민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미오리네가 외쳤음. “공무집행방해는 그만두고 핸드폰이나 이리 내. 이 이상 개입하면 긴급영장 발부한 뒤 너도 체포하고 일시적으로 서에 구금하겠어. 어찌되었건 네가 사람을 죽인 건 사실이니까.” 미오리네의 태도에 살짝 심기가 거슬린 건지 에리가 한 쪽 눈썹을 까닥이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사람들을 보며 말했음.

“이 자들은 예전부터 우리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들을 협박하고 물자를 약탈한 강도들이야. 한동안 잠잠했다만 슬슬 자신들도 버티기 힘들어진 것인지 다시금 우리에게로 노략질을 하러 왔지. 그동안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갈취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전전긍긍해가며 버텨왔는지 기억해? 하지만 이제 다 끝났어. 그 치들은 모두 죽었고 더 이상 우리를 약탈하지도 않을 거야. 이제 이들이 또 다시 찾아올까 두려움에 떨며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만한 경고를 했으면 다른 무리들 또한 쉽사리 건드리지 못 할 테니까.

허나 여기, *에리가 미오리네의 어깨에 손을 올렸음.* 이 협잡꾼 같은 놈이 이걸 정부에다가 이야기를 하겠다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들을 학살*에리가 헛웃음을 섞으며 단어를 강조해 말했음.*했다는 이유로 말이야. 우습지 않아? 아주 오랜시간 우리를 괴롭혀 온 무리들을, 이제야 되갚아 줄 기회가 생겼기에 되돌려 준 것 뿐인데 정작 법으로부터 처벌 받고 재판에 서야 할 건 우리들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는, 나와 슬레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이 마을을 지키는 일을.”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에리가 손에 힘을 주어 미오리네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음. 묵직한 통증이 느껴져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미오리네는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마을 사람들에게 재차 말했음.

“자신의 재산과 인명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고 해도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해하는 일에 옳고 그름을 따지다보면 그로부터 무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배고픈 이가 다른 사람을 협박하여 음식을 얻어내고, 빼앗긴 이가 억울함에 굶주린 이를 살해했다고 하면 이것에 대고 잘한 일이었다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무조건적으로 잘못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을 다시금 살펴봐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뒤얽히고 헝클어진 관계를 오랫동안 쌓인 감정의 해소를 위해 살인으로 끝낸다는 건 옳지 않은 짓입니다. 제아무리 가해자라도 정당한 재판을 받고 법의 처벌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혹시나, 어쩌면, 무고하게 살해되었을, 각자 수많은 사연을 가졌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앞으로의 여러분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협조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가며 미오리네가 차분하게 선명한 발음으로 읊었음. 제발, 제발 동조해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고립된 마을일수록 서로간의 유대가 끈끈하기 때문에 이대로 에리에게 넘어간다면 자신 또한 위험한 상황이었음. 언젠가 나중에 에리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한들,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어쩌면 시체를 은폐하고 그대로 자신은 행방불명이 되어 영원히 세간에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 썩어갈지도 모르지. 허나 그동안 자신과도 유대를 쌓아왔던 만큼 이번만큼은 부디 저에게 가세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음. 물론 에리가 마을 사람들과 지내온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이 마을에 온 이래 사람들과 관계를 쌓고 그들의 불평을 해소하고 마을에 사건사고가 없도록 쏟아부은 노력에 응답해주기를 바라면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침만 삼키며 슬레타가 눈치를 보고 있자 마을 사람들 속 누군가가 작게 입을 열며 말했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약한 소리였지만 그것은 분명히 미오리네에게 동조한다는 뜻이었음. 이어 누군가가 무어라 중얼거렸음. “아무리 강도들을 죽였다고 한들, 보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잖아.”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히려 자기네 사람들을 죽였다고 복수하려 들지도 몰라. 상황이 더 안 좋게 되었어.” 말이 말들을 물고 점점 의구심과 불안감이 군중을 타고 퍼져나갔음. 다행히 잘 통한 거 같아 미오리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힐끗 고개를 들어 에리의 얼굴을 살폈음. 점점 일그러지며 분노에 찬 표정을 지은 에리크트가 으르렁거리며 손가락질 했음.

“지금, 뭐라고?”

창백한 얼굴로 혹시 모를 보복을 걱정하며 불평을 중얼거리던 노인을 지목하여 에리가 묻자 노인이 움찔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음. “저 경찰 말이 맞을 수도 있지 않나. 다음에도 또 자네들이 이길 것이란 보장이 없는—”

“배신자!“ 에리가 노인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소리쳤음.

“그동안 당신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며 돌보아주던 건 우리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들을 거두고 가르치고 마을을 지키도록 길러낸 건 나였고! 무리들을 이끌어 정부로부터 버려진 이곳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끌고가던 건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나야. 그동안 당신들은 대체 무엇을 했지? 그저 하루하루 죽을 때를 기다리는 늙고 병든 노인들 마냥 손 놓고 방치하고 있었잖아.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부모 잃은 아이들이 애타게 우는 게 일상이 되어버리고, 굶주리고 허덕이며 추위에 고통받는 게 당연한 삶이 되어버려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잖아!

당장이라도 버리고 도망치고 다시는 여기에 돌아오지 않겠다 다짐한 적이 지금까지 수도없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당신들을 생각하며 참았어. 내가 나고자란 이곳, 고향과도 같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내 가족이 있는 여기를, 모두가 버리고 등 돌리고 잊혀져 방치된 이곳을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한 건 다 내 덕분이야.

그런데 언제 또 우리를 배신하고 등져버릴지 모를 저 경찰놈을 믿어? 지금까지 수도없이 그렇게 배신을 당해놓고도? 말해봐, 내 눈 피하지 말고. 내가 자경단을 만들고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저 멀리 다른 곳까지 찾아가 식량을 어떻게든 받아내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기를 만들었잖아. 썩어가고 죽어가는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은 건 바로 우리였잖아. 흐리멍텅하고 어둡기 짝이 없는 당신네들 눈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기도록 해준 것은 바로 우리였잖아! 그런데 감히 저 경찰놈 편을 들어? 당신들이 감히? 저 치들이 우리를 구원하고 보살피고 도와줄 거라고 믿는 거야?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왔겠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강도들로부터 공격 받아 죽어가고 있을 때 방치하는 게 아니라!!”

에리크트가 잔뜩 노기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음. 마을에서 에리와 슬레타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음. 항상 의젓하게 마을을 이끌던 에리가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울분과 분노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숨을 몰아쉬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음. 누군가가 작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렸음. 에리가 형형한 눈빛으로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자 다들 말없이 뒤를 돌아 집으로 걸어갔음. 슬레타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에리의 등을 감싸더니 살짝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음. “에리, 집에 가자.” 휘청이는 에리를 부축하고는 걸어가던 슬레타가 뒤를 돌아 미오리네에게 말했음.

“미오리네 씨,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오늘 있었던 일은... 시간이 지나면 다들 진정될 거예요.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에요. 이미 예전부터 여러번 겪어왔으니까요. 다만, 요새는 다들 평화로웠으니까, 조용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냈으니까...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한 걸 거예요. 놀라게 해드려 죄송해요.”

내일 뵈어요. 잘 자요.

그 말을 끝으로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에리와 같이 걸어가는 슬레타의 뒷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홀로 남은 미오리네는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불꽃과 연기가 섞인 화약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연 뒤 하나를 입에 물었음. 몇 번이고 스틱을 부딪혀도 불똥만 작게 튈 뿐 쉽사리 불씨가 붙지 않자 신경질을 내며 라이터를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담뱃잎만 잘근잘근 씹으며 주위를 둘러봤음. 에리가 가면서 바닥에다 던진 건지 액정에 금이 간 핸드폰이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음. 주워다가 흙먼지를 툭툭 털고 전원을 켜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음.

여전히 죽은 이들의 시체는 어지럽게 주변에 널려있었고 땅은 피에 물들어 거무죽죽하게 변해있었음. 내일 전부 수습하지 않으면 금방 썩어버려 벌레들이 엉망으로 꼬일 게 분명했음. 한숨을 길게 후 내쉬고는 시체의 손을 잡고 끌어 일열로 늘어놓은 뒤 창고에 쌓여있던 먼지 쌓인 흰천을 가져와 털고는 살포시 시신 위에 덮었음. 짧게 명복을 빌고는 바위에 걸터앉아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때문에 시큰거리는 머리를 푹 숙이고 미오리네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필사적으로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생각했음. 이대로 넘어갈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보고할 수도 없었음.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몇이나마 동조해준 것은 잘된 일이지만 그마저도 에리의 하소연*과 같은 으름장*에는 전부 부질없는 일이었음.

정부에서 진상 조사를 하기 위해 사람을 파견보내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에리에게 처리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음. 제아무리 원한이 있었다고 한들 본인 입으로 그동안 아무도 살해하지는 않았으니 살려달라고 항복한 사람한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겼는데 자신한테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음.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오리네는 작게 욕짓거리를 내뱉었음.

시골이라 그런지 별은 참 많네. 아래에서 일어난 일과는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