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비 /글

사냥개를 사냥하는 방법

책과 집 2018. 6. 30. 04:00





Lana Del Rey - Money Power Glory

https://www.youtube.com/watch?v=bQUoBF5xfRU





I want money,
나는 돈,

power
권력

and glory
그리고 영광을 원해.






*




그는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위에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했다.

장군, 명예로운 왕이 내려주신 이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이자 항상 목숨을 걸고 전장의 선두에 서는 곳. 지휘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시시때때로 목숨이 엇나가는 상황에서 여러번이나 살아남은 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 가장 걸맞는 자라고 여겨왔다. 허수아비 같은 왕이 몇 번이나 세워져도, 파도 앞에 놓인 위태로운 모래성 마냥 나라가 기울 때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었고, 자신의 사명이었으니까. 자신은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 퍽이나 왕의 개에게나 어울리는 짓이라고 누군가 그에게 조소가 섞인 말을 내뱉으면 그는 묵묵히 자신의 손가락만 툭툭 건드릴 뿐이었다. 왕의 개라. 틀린 말은 아니지. 똑똑한 사냥개는 주인의 배는 되는 몫을 해낸다.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고 야생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냥개가 지나치게 영리해지면 자만심이 들고, 후에는 자신보다 못하다 여기는 주인을 사냥감으로 여겨 물어뜯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곧 길게 숨을 한 번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주인을 무는 사냥개는 잡아먹히는 법이다. 가죽이 벗겨져 주인을 치장하는 옷이 될 것이고, 이빨은 장식품으로 쓰여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항상 자신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되내이고는 곧 군대를 통솔시키고 새로운 훈련 방법을 생각했다. 왕이 아무리 멍청하고 약하다 할 지라도, 나라의 왕은 곧 자신의 왕이었고 복종하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에 잡생각이 들면 그는 훈련을 하며 떨쳐냈다. 훈련, 식사, 수면, 생각. 훈련, 식사, 수면, 생각. 그의 하루는 항상 그런 식으로 저물어갔다.



*



"멍청한 왕, 뮤니놈들에게 항복을 하겠다고!"


그는 기막힘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 끝 까지 차오른 열 때문에 두통이 지끈지끈 몰려왔지만 진정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라의 원수, 백성을 학살한 자, 자신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전쟁을 일으킨 무리들. 그런 자들에게 싸움을 포기하고 평화 협정을 맺겠다는 건 곧 항복을 의미했다. 겁쟁이에 약해빠진 왕이라는 건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한심할 줄은 미처 몰랐다. 폐하, 폐하는 제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강한 군대와, 영리한 수하들과, 나라에 지금까지 혼신을 다한 장군을 내비두고, 원수의 국가와 협정을 맺으시겠단 말입니까? 그들은 우리의 동포를 죽이고, 고향을 빼앗고, 마을에 불을 지른 자입니다. 백성을 학살하고 그 날을 기념일로 세우고, 먼저 전쟁을 저지른 자도 그들 쪽입니다. 왜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합니까. 왜 우리가 싸우지 않고 그들에게 항복해야 합니까? 싸우십시오, 폐하. 우두머리의 머리를 치고, 그 피로 길을 적시고, 그 길을 걸어 우두머리를 잃은 적군들과 모든 머저리들을 치시란 말입니다! 내가 당신을 모시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당신은 그러기 위해 태어났어! 그는 이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주인의 말을 따라야 했던 사냥개는 답답했던 주인을 그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멍청한 주인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사냥개마저도 죽게 만드는 법이다. 영리한 개는 그런 주인을 언제까지고 따를 수는 없었다. 충성, 헌신, 복종,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따랐던 멍청한 주인은 정작 자신의 개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조차 알 수 없었고, 이윽고 개는 목줄을 끊고 주인에게 덤벼들었다.


*


"안녕하십니까, 공주님."


자신이 죽인 왕의 후계자가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것도 적의 본거지 한복판에! 이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자신도 생각하지 못 했던 일이었고,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용기는 가히 박수쳐줄 만 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곧 무지할 정도로 멍청한 용기에 터져나오는 비웃음과 이글거리는 욕망을 내리깔으며 그는 후계자에게 점잖게 인사했다. 그래, 나라의 왕이자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나에게 화가 난 것이겠지. 그렇지만 군대는 어디갔지? 널 따르는 수 많은 수하들은? 홀로 나와 이 군대를 상대하겠다고 무모하게 적장에 뛰어들다니, 정말로, 멍청하고, 한심한 놈이군! 아니지, 그래도 칭찬은 해주지. 넌 내가 따르던 왕 보다는 쓸만한 왕이야. 자신들에게 가망없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손수 우두머리가 나오시다니, 자. 이제 어쩔 셈인가? 대화를 시도하려고? 아니면 홀로 이 수많은 무리들과 싸워보겠어? 어쩌시겠나, 공주님?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자신을 향해 완드를 들고 서 있는 왕의 후계자를 바라보는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자만해서? 아니야, 이건 우리에게 승산있는 전쟁이었어. 내가 힘이 부족해서? 그럴 리가, 나는 적국의 왕까지 직접 쫓아가 죽인 자라고. ...내 왕을 배신해서? 아니야, 애초에 그랬다면 우리가 졌을 전쟁이었어. 불사의 몬스터, 죽지 않는 자, 그것이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자신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자신은 죽지 않는다. 몸의 어디가 잘리든, 어떤 공격을 받든, 상처는 회복됐고 몸뚱아리는 바로 재생되어 그 어떤 타격도 자신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적들은 잘리면 다시는 재생도 회복도 불가한 약해빠진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죽음 또한 그들에게나 가까운 이야기 였기에 그는 자신이 지리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죽음이란 자신에게는 터무니 없이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래왔는데.

재생되지 않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마법을 외우던 공주는 자신의 심장을 가르키다가 곧 자신의 손가락을 향해 방향을 틀고 마법을 외쳤다. 빛이 날아가고, 자신의 손가락이 잘려나갔을 때 그는 자신만만한 비웃음을 지으며 불안해하는 모습의 공주를 바라보며 곧 재생될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재생이 되었어야 했는데. 되었어야 했는데, 어째서?

재생이 되던 손가락은 이내 재가 되어 산산이 흩어져 부숴졌다. 불사의 몬스터. 그 이름은 곧 허황으로 가득 찬 쓸모없는 이름이 되어 자신의 잘린 손가락마냥 사라졌다. 자신을 따르던 수 많은 무리들은 그 모습에 패닉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곧 산을 이루던 군대들은 자신과 공주만 남기고 모두 사라져 먼지만 그 공백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육체가 재생되지 않는다. 자신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을 노리지 않고 손가락을 노렸다. 왜?

날 얕잡아 봐서?

하, 토피는 허탈한 한숨을 내뱉으며 왕의 후계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일부러.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멍청한 왕을 모실 때도, 왕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적국의 왕을 죽였을 때도 느껴본 적 없었던 기분. 난 대체 뭘 믿고 이랬던 거지? 죽음은 그들에게나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절대 날 죽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잖아. 아니었어. 아무것도. 그들은 자신을 죽일 수 있었고 자신이 죽인 왕의 후계자는, 자신을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그 사실 만으로도 토피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올린 명예, 지위, 신념, 그리고 자만심까지 모두 다.

그는 공주를 노려보고는 한 때 자신을 따르는 수 많은 무리들이 가득했었던 자리를 떠나 정처없이 걸어갔다. 뒤에서 공주를 따르는 듯 한 신하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몬스터 군대를 전부 처단하고, 그들을 해산시켜 나라나 지도자를 갖지 못하게 하라. 자신이 일으키고자 했던 나라는 이제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고,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모두 자신이 자초했던 일이었고, 그 일의 결과였다. 그저 왕을 따랐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자신의 멍청한 주인을 물지 않았으면 이런 결과까지 오지는 않았을까? 사냥개는 주인을 잃었고,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던 존재에게 사냥 당했다 살아남았다. 그는 걸었다. 그저 계속,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하게 걸어가 이내 짙은 어둠이 깔린 숲 속으로 사라졌다.






*





토피의 과거 이야기가 보고 싶어서 쓴 글 인데 토피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게 더 맞는 거 같네요.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흔들리는 그런 토피가 보고 싶었는데 공식에서 나오는 토피는 거의 흔들림이 없는 완벽한 존재기도 하고 토피는 왜 장군이 되었고 뮤니와 뮤멘이 협정을 맺을 때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궁금한데 그것 까지는 공식에서 풀어주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사냥개를 사냥하는 방법... 인데 이건 그냥 삘 받아서 지은 제목인데, 결과적으로는 사냥개가 자만심에 가득 찰 때를 노려서 사냥하면 된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문이 토피가 자만한다고 생각하고 공격한 거 같지는 않아요. 왕은 죽고 왕의 후계자인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할 상황에서 위원회는 자기를 자꾸 압박하지, 신하들은 서로 싸우지 스트레스 받을 대로 받은 문이 아예 마음 단단하게 먹고 이클립사에게 불사의 몬스터를 죽이는 방법을 물어보고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 하면서 적장으로 쳐들어간 거 같은데 결국에는 승리하고 위원회와 신하들이 충성하고 복종하는 왕이 되었으니 여러모로 대단한 캐릭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