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 /글

(은찬은영) 동질

책과 집 2019. 12. 23. 22:15

 

 

 

날 사랑해? 

그래. 

 

거짓말이구나. 

 

주은찬은 생각했다. 자신의 누나인 주은영은 저를 사랑하지 않으리라고. 가족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많은 사랑과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그곳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없었다. 애정. 사랑. 욕망. 가족을 향한 감정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욕정. 지배. 소유. 가족이 가족에게 품고 있기에는 옳지 못한 감정들. 남이 본다면 뭇매 맞을 감정들. 부적절한 욕구들. 아, 누나. 

 

나는 누나의 그런 점들이 정말 좋아. 

 

지극히 고지식이고 상식적인 사람. 조금의 오차도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 언듯 느슨해보이지만 항상 날이 서 있는 사람. 그렇지만 누나, 가끔은 좀 쉽게 생각해 봐. 가볍게, 너풀거리듯이, 종종걸음으로 걷듯이, 응? 그러면 쉬워. 아주 쉬워. 답은 이미 나와있잖아. 솔직히 말해봐, 누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누나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건 내가 가족이기 때문이지? 

 

아주 단순하고 가벼운 문제야. 가족. 

그 하나의 일 때문에 날 거부하는 거지? 

 

그렇지만 누나, 잘 생각해보면. 

누나는 내 가족이 아니잖아. 인연이 끊겨 누구도 누나를 기억 못 해. 이보통령이 없으면 가족들조차도 알지 못 하잖아. 내가 누나를 기억하는 건 주작의 신기, 이보통령 덕분이지.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주작 후계자이기 때문이야. 

 

누나는 인연이 끊겼어. 그 누구와도 이어져 있지 않아. 

그럼 이제 문제될 건 없는 거지? 

 

 

울지마, 누나. 누나가 울기를 원한 건 아니었어. 미쳤다니?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어.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마. 누나는 날 정말 싫어한다니까. 걱정 마, 아무리 날 밀어내도 어딘가로 가지 않을게. 뭐? 그야 당연하지. 누나는 날 사랑하잖아. 

 

누나도 날 사랑하잖아. 그치? 

 

언제부터 그랬냐고? 음, 글쎄. 아마도 누나가 스승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을 때부터? 아마도. 확실하진 않아. 뒤늦게 터지듯 떠오른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 그 때가 제일 확실할 걸. 어쩌면 그보다 전일 수도 있고, 후일 수도 있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현재의 감정이지. 안 그래? 누나.

가끔 누나가 그런 눈으로 쳐다볼 때마다 이모가 생각나. 그거 알아? 누나는 이모를 꼭 닮았어. 정말로 많은 점이 닮았지. 습관도, 말투도, 행동도. 그리고 제 친가족을 사랑한 점까지.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누나는 이모를 사랑하잖아. 이모는 우리 엄마를 사랑했지. 가족의 사랑 말고, 그런 사랑 말이야. 내가 누나를 바라보고 있는 마음 말이야. 

 

알아, 누나는 가족을 사랑하지. 저어어엉말로 사랑해. 무슨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하하. 농담이야. 그렇지만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누나가 이모를 바라보는 감정은 가족의 사랑이 아니지. 그 표정은・・・ 뭐야? 정말로 당황한 표정이네. 와, 내가 누나의 그런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어. 어, 어, 아니야. 그걸 빌미로 뭘 할 생각은 없어. 말하지도 않을 거야. 피차일반인데 내가 뭘 어쩌겠어? 그렇지? 

 

뭘 원하냐고? 

 

아까부터 말했잖아. 누나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응. 

 

나도 사랑해, 누나. 

정말로 많이. 

 

 

아, 누나는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