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개, 사탕 두 개
*
이미 녹아서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봉지 속 초콜릿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마르코. 초콜릿의 출처는 불명. 머리를 굴려 온갖 초콜릿의 근원지를 생각해보지만 도저히 밝혀지지가 않는다.
누가 준 거지.
거실에서 음식을 요리하고 있을 때 *나쵸가 아니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왔더니, 식탁에 놓여져 있던 출처불명의 초콜릿. 처음에는 누군가 여기다가 놓고는 깜박 두고 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초콜릿 옆에 놓여져있는 쪽지에는 정확하게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다.
- 마르코 디에즈, 그리고 (북북 줄을 그어 알아볼 수가 없는 글씨) 너에게.
흠, 스타?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의 이름. 하지만 이내 곧 그 예상은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타라면 자신에게 당당하게 줬겠지. 뮤니의 *마법* 이라며 반짝반짝 빛나는 유니콘들이 휘날리며, 신나는 초콜릿이 쏟아지는 그런 신기하고도 재밌는 마법을 보여주며 나에게 주었을 거야. 그리고 같이 먹었겠지. 그럼 일단 스타는 제외.
그럼 톰인가?
설마, 그럴리가! 마르코는 실소를 터트린다. 톰이라면 오히려 이런 흔하디 흔한 평범한 초콜릿이 아닌 평생 살아가면서 보기 힘들 것들을 줬을 걸. 음, 그래. 예를 들어... 가령 눈알이 온 몸에 여러 개 달린 몬스터라던가. 질퍽질퍽 알 수 없는 액체가 온 몸에서 흐르는 괴물. 게다가 편지라니. 톰이라면 몬스터를 시켜서 갖다줬거나, 나에게 직접 와서 전해줬겠지. 뭐, 아니면 나를 난데없이 갑자기 납치해서 주던가. 좋아, 톰도 제외.
...제키?
마르코는 순간 얼굴이 해가 져가는 노을마냥 붉어진다. 그, 그, 그럴리가. 그는 이성을 다 잡고 천천히 다시 생각해본다. 제키라면 오히려 나에게 직접 전해줬을 거야.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오면서 나에게 마르코, 선물이 있는데. 라고 말하고는 선물을 전해줬겠지. 이 편지와 함께. 그리고... 화장실에 갔다온 그 짧은 시간안에 초콜릿이 이렇게 빨리 녹을리도 없고. 오븐이 주위에 있기는 해도 바로 곁에 있는 것은 아니었는 걸. 제키가 설마 이렇게 형태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다 녹아버린 초콜릿을 *편지* 와 함께 두고 갈 리도 없고. 무엇보다 제키는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군지 적어놓을 거야. 그래, 음. 아쉽지만 제키도 제외.
누가 남았지. 재나?
서-어-얼-마-! 마르코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는다. 재나가 나한테 뜬금없이 선물을 줄 일이 뭐가 있겠어. 장난이라면 모를까! 먹어보면 분명히 무지 쓰거나, 짜거나, 맵거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타 놓았을 걸! 음, 그리고 스타랑 같이 합동해서 장난을 쳐놓았겠지. 이런 재밌는 일에 *남을 골탕먹이는* 재나가 스타를 안 부를리가 없으니까. 그럼 이 편지는 뭐지? 둘이 같이 말썽을 부린 거면 더 재미난 걸 적어놓았거나, 아니면 편지에도 장난을 쳤던가, 유니콘과 무지개와 별이 그려져 있다던가 할텐데. 달랑 이렇게 글 몇 글자만 적어놓고 *수정한 흔적도 안 지워놓고?* 나에게 준다고? 그럼 누가 봐도 뻔한 장난인 것을 눈치 챌 텐데? 그럼 재나는 아닌가?
그럼 누구지? ...글로서릭?
우웩, 맙소사! 신이시여! 그럴리가 없지. 그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책요정이 주는 선물이라면, 거절하는 게 더 이로울 거야. 초콜릿에 무엇을 넣었는 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 아니, 애초에 저게 초콜릿이기는 한 거야? *초콜릿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세상에, 음, 진정하자. 애초에 글로서릭은... 남에게 선물을 줄 사람이 아냐.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맞겠지. 그리고 편지를 남길리가 없어. 편지라 해봐야 선물이다, 마르고. 이렇게 적어놓았을 걸! 글로서릭은 제외. 그럼 이제 누가 남았지?
그리 친하지 않은 녀석들로 넘어가볼까.
...
토피?
세상에.
설마! 저어어얼대로 그럴리가 없어. 애초에 그 짧은 시간 안에, 여기까지 올 수는 없을 걸! 음, 아냐. 차원 가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잠깐, 근데 토피가 완드를 빼앗는 것을 제외하고 여기에 올 일이 뭐가 있겠어?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짰겠지. 그래, 내가 이 초콜릿을 먹거나 건드려서, 기절하면 나를 납치해 간다던가. ...그렇다면 몬스터들을 보내서 벌써 데려갔을 걸! 초콜릿도 이렇게 다 녹아 봉지에 눌러붙어버린 *함정이라면 이미 뻔한 함정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초콜릿이 아닌 고급진 *어쩌면 귀여운* 초콜릿을 주었을 테고.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말이야. 편지도 이렇게 줄로 박박 그어서 수정한 상태로 그대로 주지 않았을 거야. 이런 엉성한 계획에는 누구도 빠져들지 않는다고. 차라리 루도면 모를까.
멈칫.
...루도?
아, 제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최악의 경우만 나오잖아! 마르코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인다. 루도면 무엇을 넣었을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아니, 저게 초콜릿은 맞는 거야?! 그- 그럴리가 없어! 루도라면 선물로 초콜릿이 아닌 몬스터를 보내왔겠지! 그것도 내가 아니라 스타에게 보냈을 거야. 완드가 목적인데, 굳이 나한테 먼저 접근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함정이라고 해봤자, 이건 너무 허술하고... 뻔하다니까.
그럼 대체 누구지?
마르코는 다시 한 번 녹아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초콜릿을 쳐다본다. 그래도 선물인데.
받아야 할까?
마르코는 주위를 둘러본다. 이미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르코네 부모님은 여행을 갔고, 스타는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레이저 강아지들을 제외하고*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된다기라도 한다는 듯이. 초콜릿이 녹아서 엉켜붙어 안이 끈적끈적해진 봉지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뜯고, 손가락으로 초콜릿을 콕 찔러 입에다가 넣는다.
달다.
녹아도 초콜릿은 초콜릿이다. 카카오와 버터, 그리고 설탕 등이 들어간 음식.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달달한 음식. 마치 사랑처럼.
사랑처럼?
마르코는 순간 멈칫하며 가만히 초콜릿을 바라본다. 그리고 초콜릿 옆에 붙어있었던 쪽지에 시선을 옮긴다.
사랑이라.
에이, 설마.
마르코는 피식하고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 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녹아서인지 손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는 초콜릿을 마저 혀로 핥고, 다시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간다.
아까 만들었던 요리가 막바지에 이뤘던 것이 기억나 마르코는 부엌으로 곧 다시 돌아온다.
사탕.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달달한 음식.
마치 사랑처럼.
모든 사랑이 달콤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탕과 초콜릿은 달달하지.
알록달록 색소가 들어가 형형색색으로 보석마냥 빛깔이 일렁이는 여러개의 사탕들. 단 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예뻐서 좋아할 것 같은 모양이다.
마르코는 사탕을 하나하나 집어 그릇에 옮겨담다가, 문득 식탁 위에 놓여져 있는 초콜릿을 바라본다.
나도 선물이나 할까.
마르코는 씩 웃음을 머금으며 선반에서 샟노란 별이 그려져 있는 여러개의 봉지를 꺼내, 색이 햇빛에 닿은 물처럼 반짝거리며 일렁이는 사탕을 담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줄지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르코는 사탕을 한 개 집어먹는다.
달콤한 것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할 걸.
그는 기분좋은 웃음을 짓는다. 달콤한 냄새는 부엌부터 서서히 집 안을 가득 채워나간다.
*
그래서 초콜릿은 누가 줬을까요. 마르코는 그 후에 남은 초콜릿은 남김없이 다 먹었답니다. 나쵸랑 같이.
초콜릿은 한 개지만, 사탕은 두 개죠. 마르코 하나, 그리고 곧 받을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