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센엘사) 근면, 성실, 정의 외전 1

책과 집 2024. 8. 23. 02:51

외전은 센엘사로 써보고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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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꿈 속에서의 장소는 언제나 똑같다. 몇 개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저택 바깥에 넓게 펼쳐진 정원, 약간의 먼지가 쌓인 복도 바닥을 한껏 차지하고 있는 부드러운 벨벳 재질의 카페트, 용도를 알 수 없는 굳게 잠겨있는 수많은 방문들, 그리고 그곳을 오가며 저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비웃음과 조롱 섞인 말들을 흘리던 조직원들.
창살은 없지만 사실상 감옥과 다름없던 방에 갇혀 가만히 무력감을 느끼며 침대 위에 언제까지고 앉아 기다리고 있노라면, 끝끝내 또 다시 그가 찾아왔다. 저물어가는 석양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갈대와 같은 머리색을 지니고 깊은 심해의 푸른 눈을 가진 사람. 자신의 소꿉친구였고,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였으며, 자신을 겁탈하고 납치하여 감금하고, 차마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가라앉아 그동안 무수히 은닉됐을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던 범법자.

린다. 린다 메사이야.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앞으로 몇 십 년 간은 바깥에서 마주할 일은 필연적으로 없을 터였다. 무기징역까지는 선고 받지 않았지만, 워낙 지은 죄가 무거워 한참 치기 어리고 생기 넘치게 활력을 띄던 육체가 노쇠하고 병들어 기력을 잃고 간신히 삶의 끝자락만 붙잡고 명줄만 간간이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추락하였을 때야 비로소 차가운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구조물로부터 벗어나 다시금 삼라한 생명들의 숨을 품고 있는 산소와 어젯밤 내린 비의 습기와 아침에 탄생한 이슬을 여즉 머금고 있는 풀밭의 축축한 흙내음을 맡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였다.

그와의 인연은 앞으로도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이어질 테지만, 악연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릇된 짓들은 이 이상 삶을 이어나가지 못 하고 철과 곰팡이 냄새가 이따금씩 풍겨오는 삭막한 건물 안에서 끝을 맞을 것이었다.
그래서 엘사는 애써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끊임없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불안감을 꾹꾹 내리누르고 다시는 제 눈에 띄지 못 하도록 밀어내려 애썼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흉터처럼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시간이 흘러도 고래의 힘줄마냥 질기도록 곁에 붙어 엘사를 갉아먹고 있었다. 가끔은 이러한 불편한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 일부라도 덜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종종 들었지만, 그런 욕구가 솟아오를 때마다 영상 속 자신의 모습 또한 같이 물낯 위로 떠오르며 엘사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럴 순 없었다. 남에게 치욕스럽고 비천한 모습을 자기 스스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롯이 홀로 이 모든 고통을 끌어안고 감내해야만 했던 엘사는 어떻게든 일말의 위구심이라도 줄여보고자 직접 아직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여전히 불에 탄 나무와 콘크리트들이 풍기는 역겹고 매캐한 연기가 잔존하는 화재 현장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저택을 통째로 집어삼킨 걸로는 부족했는지 산까지 스멀스멀 기어올라 산 것과 죽은 것을 가리지 않고 게걸스레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화마는 어느새 전부 제압 당하고 그 자리에는 대신 이미 먹혀버려 자아와 영혼은 사라지고 텅 빈 송장과도 같은 검은 잿가루와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도 아직 수색할 거리가 많이 남아서 일단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건지, 아니면 이미 잔뜩 불에 타올라 엉망이 되어버린 한 때는 저택이었을 건물을 수습하기 위해 인력을 투입하기에는 다른 사건을 해결하기에도 사람이 부족해 그저 차일피일 미루며 방치해 놓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어찌되었건 몇 명의 순경을 빼고는 한적한 이 상황이 엘사에게는 더 나은 편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찾아와 무엇을 하든 그다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검정과 노란색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교차되어 있는 폴리스 라인을 대강 손으로 잡아 위로 올린 뒤 그 사이로 몸을 구겨넣고 저택 내부로 진입한 엘사는 여전히 불쾌하게 코를 근지럽히며 자극하는 지독한 연기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를 보아도 검게 그을린 물건과 벽들만 가득한 탓에 대체 어디가 자신이 갇혔었던 방이고 식기를 훔쳤던 부엌이었는지 도통 구별이 되지 않았다. 또한 화재로 기둥이 약해지면서 건물이 무너진 탓에 계단을 타고 3층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주변의 건조물 더미와 잔해를 밟고 창문을 타고 넘어간다면 4층까지도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수고를 무릅쓰기에는 위험성이 너무나 높았기에 순순히 포기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한 때 사람이 머무르며 지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흑과 회색의 무채색 만이 남은 내부를 보며 이 정도로 불탔으면 영상의 원본 파일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었든 간에 제 형태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고 영상 또한 전부 유실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엘사는 발걸음을 돌려 과거의 기억을 하염없이 상기시키는 괴로운 공간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래, 이젠 전부 다 끝난 거야.’ 사건이 있은 직후 몇 개월이 지났건만 경찰로부터 어떠한 영상에 대한 소식이나 이야기는 추호도 들을 수 없었다. 만약 영상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어떤 형식이든 간에 분명 제게 말이 전달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당사자인 자신이 현재까지 들은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사실상 영상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것은 곧 화재로 전소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뒤늦게 밀려오는 안도감에 불안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자 엘사는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서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이네, 엘사. 이젠 예전보다 드문드문 찾아오는 걸 보니 많이 바쁜가 봐?” 약간은 색이 바래 오래된 옅은 홍엽빛의 죄수복을 입은 린다가 가림막 사이로 다소 조롱과 반가움을 섞은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바빴지, 누구 덕분에.” 이에 비슷한 뉘앙스로 맞받아치자 즐겁다는 듯 대놓고 큭큭거리며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린다에 괜한 헛짓을 했다 생각했는지 코로 짧은 숨을 훅 내뱉은 엘사가 건조한 입술을 넌지시 핥고는 말을 이었다.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잡아들였어. 우두머리의 행방도 코 앞에 있고. 다시는 그런 집단이 생기지 못 하도록 단단히 뿌리 뽑을 거야. 다시는…” 엘사가 잠시 멈칫하더니 숨을 고르곤 말했다. “…너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못하도록.”

그 뒤의 말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는 듯 망설이며 말을 늘리던 엘사는 결국 마지막 문장을 내뱉으면서 입에 감도는 쓴 맛과 텁텁함을 느끼곤 연신 침을 삼켜대며 어떻게든 쓸쓸한 입 안을 무엇으로든 채우려고 애썼다. 린다의 죄는 스스로 키운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그 죄를 심어준 원인은 자신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소꿉친구가 엇나가기 직전, 어쩌면 잘못된 길을 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마지막 기회의 순간에 손길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린다가 그렇게 된 것이 전적으로 어머니와 린다 본인의 탓이라 할 수 있을까. 과연 거기에 내 책임은 없는 것일까.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후에도 끊임없이 엘사의 머릿속 한 켠에 박혀 괴롭히던 질문이었지만, 그럼에도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형사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범죄자의 길을 계속 가기로 결정한 건 린다 본연의 선택이었고, 자신은 그러한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경찰이었으니까.

내 말을 듣고 린다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괜스레 눈치가 보인 엘사가 고개를 아래로 깔고 잠시 자신의 오래되어 낡아빠진 곳곳에 쓸리고 넘어져 생채기 투성이인 바지에 시선을 옮기고 침묵을 지키자, 살짝 불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린다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엘사, 영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 말에 일순 몸의 모든 현상과 동작이 마치 석화된 것마냥 굳어버린 엘사가 뻣뻣한 고개를 억지로 움직여 간신히 자신과 시선을 맞추자 린다는 표정이 볼만하다는 듯 입꼬리를 비죽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영상에 대한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얼굴에 있는 대부분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자신이 긴장했음이 낯빛에 여실히 드러났지만, 애써 티를 안 내려 노력하면서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른 채 엘사가 말했다. “…이미 불타 없어졌어.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날 뒤흔들진 못 해. 네 말을 누가 믿을 거 같아?” 마치 어린아이가 속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뻔한 거짓말을 한다는 듯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보인 린다가 가림막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한껏 빈정거리며 속삭였다.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엘사?” 의미심장한 말투였지만 어떠한 함의나 진심도 없이 그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엘사는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듯 일체의 대답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나가는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잠깐 멈칫하고는 뒤돌아서 린다와 눈을 마주하곤 말했다.

“넌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약간의 분노와 혐오가 서린 말투로 작게 으르렁거리듯 내뱉자, 그리 성내지 말라는 듯 린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방긋 미소지었다. “당분간은 바빠서 못 찾아올 거야. 어쩌면 오랫동안 못 올지도 모르지. 잘 지내.” 최대한 덤덤하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엘사에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장난을 치는 것처럼 가벼운 어투로 린다가 맞인사를 했다. “글쎄. 넌 결국 나를 다시 찾아오게 될 거야. 어쩌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더 이상의 담화는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돌려 획 나가버리는 엘사에 작게 푸흐흐 웃음이 터진 린다는 면회가 종료되었으니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라는 교도관의 지시에 알겠다는 듯 수갑을 절그럭거리며 손을 까닥이며 수긍의 표시를 알렸다. 문 너머로 설핏 화가 난 듯 이따금씩 쿵쿵거리며 힘이 실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곧 조용해졌다.

네가 어서 내게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네, 엘사.

𓍝

몸집을 커다랗게 부풀린 속내를 알 수 없는 짐승과도 같은 위험한 범죄 조직을 잡겠다고 단신으로 뛰어든 옆집 꼬맹이가 납치를 당하고 다시 돌아왔다가, 또 다시 납치되어 며칠 실종되었다가 마침내 무사히 돌아와 범죄 집단까지 전부 검거해 소탕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슬슬 센도 한시름 놓으며 자신을 옭아매던 불안감을 벗어던지고는 다시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형사의 길을 선택한 시점부터 목숨에 대한 위협과 여러 사건사고는 피할 수 없는 동반자와 같다고 어느정도 예감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큰 일에 휘말릴 줄은 몰랐기에 요 몇 개월간 일어난 일은 엘사의 주변인에게도 꽤나 큰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어린아이가 그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은 센에게는 남보다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둘 다 성인이고 더 이상 아이 취급을 할 시기는 지났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센의 눈에 비친 엘사는 아직도 자신이 놀아주던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만 눈을 감고 기억을 뒤척여도 엘사의 어린 모습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아이 취급을 하면 이제는 그러지 말라는 듯 투정을 부렸지만, 그래도 제게 엘사는 언제나 동생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터였다. 그런 친한 동생이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온 몸에 상처와 흉터를 매달고 혈흔과 흙먼지에 얼룩진 채 나타났으니 센 입장에서는 여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레나의 자식 아니랄까봐 어느 정도 육체가 회복되자마자 다시 일에 뛰어드는 엘사를 보며 이젠 완전히 과거의 일들로부터 미련을 떨치고 나아가기로 했다는 걸 알아챈 센은 그제야 자신도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직 군인으로 살다가 은퇴한 후 호신술 강의와 사격 조교로 일해왔던 센은 근래에 일어났던 재해와도 같은 사건들이 모두 끝나고 비로소 주변이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바다의 물면처럼 도로 잠잠해지며 고요해지자 이제 다시 본인의 삶에 집중하며 과거에 벌어졌던 끔찍한 일들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혹시나 납치 당했던 일로 트라우마 같은 걸 앓지는 않을지 엘사에게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며 상태를 살폈지만 딱히 그러한 내색을 보이지 않고 변함없이 대하는 엘사에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재차 확인한 센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일상을 맞이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각자 본연의 기와에 집중하느라 서로 연락이 조금 뜸해졌을 즈음, 센은 간만에 아무런 일정도 없는 휴일에 마음껏 나태와 여유를 부리며 흘러넘치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총명과 기지는 잠시간 내비두고 태만과 늦장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채 티비 채널을 이저리 돌리며 한가로이 하일을 보내던 센은 곧 영화 보기도 질렸는지 리모콘을 들어 꺼버리고는 벌렁 소파에 누워 고요한 적막을 느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조용한 거실에 울려퍼지는 소리라고는 벽에 매달린 시계의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와 자신의 심장 박동만이 유일한 곳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하얀 불빛을 내뿜는 전등을 쳐다보던 센은 문득 마지막으로 보았던 영화에 나온 키스신을 생각하고는 눈을 왼쪽으로 도록 굴리며 곰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안 하긴 했지.’ 사춘기 때의 청소년 마냥 한참 불타오르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타고나길 월등한 체력과 강인한 육체를 지니던 센은 가끔 욕정이 들끓을 때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거나 홀로 풀고는 했다. 그마저도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는 귀찮아져서 혼자 해소해 끝내곤 했지만, 그렇다고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여러 스트레스와 많은 일들로 시간이 나지 않아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모든 일정의 뒤로 밀어버린 채 하지 않고 살았지만 뒤늦게 여유가 찾아오면서 그간 쌓였던 것들이 이제는 자신의 욕구에 좀 충실해져 보라며 점차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욕구 불만이 되겠다 싶어 어차피 휴일이니 성욕 해소도 할 겸 간만에 뭐라도 할까 핸드폰을 집어든 센은 여러 어플을 뒤적거리다가 곧 그것도 귀찮아졌는지 그냥 집에서 빨리 해결하자며 몸을 일으키고는 방으로 가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켰다. 아무것도 안 보고 하기는 영 그러니 뭐라도 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사이트를 뒤적거리던 때, 잠깐 스쳐지나간 영상 너머로 무언가 익숙한 형태가 눈에 비추었다가 사라졌다.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이 흠칫 느껴진 센이 이상함을 느끼며 다시 스크롤을 올려 거북함의 원인을 찾아보려하는 순간, 눈 앞에 보여진 영상의 내용에 흡사 지독한 마취제에 맞아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버린 것처럼 굳어버린 센은 호흡조차 잊어버린 채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이해해보려 애썼다.

모니터에 틀어진 영상에서는 저택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엘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긴 채 여러 말소리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