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엘사) 피는 물보다 진하다
엘사의 삶은 불행하지도 다복하지도 않았다. 단 몇 마디의 구절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으로는 그가 살아온 인생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한참 부족했기에 그보단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설명이 필요했다.
다만 엘사 본인은 자신, 혹은 누군가에 대해 실제적이고 세밀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어휘를 갖추지 않았기에 무어라 말을 이어가며 살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엘사가 선택한 방법은 침묵이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기꺼이 크게 소리칠 준비가 되어있는 성대를 울려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수많은 말들을 다부진 치아로 억지로 씹어대며 다시 몸 아래의 어두운 구석으로 내려가도록 집어삼키는 게 더 나은 길일 것이라 믿었다. 그렇기에 엘사는 이제껏 자신의 의지와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와 생각들을 함구해왔다.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단어들을 되는대로 내뱉다가는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엘사 자신이 생각하기에 본인은 두서없이 마음대로 날뛰는 망아지 같은 단어들을 한데 모아 쓸모없는 것들은 열외시키고 문맥에 맞는 것들은 추려내어 질서정연하게 배열하는 일에 소질이 없었다. 틈만 나면 제멋대로 날뛰려고 드는 격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며 진정시키려 해도 궁지에 몰린 짐승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을 결박하는 올가미를 어떻게든 벗어나려 더욱 심하게 광분하며 설칠 뿐이었다.
불인정시한 그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동정심을 받았으며, 누군가에게는 동경 섞인 흠모를 받았고, 누군가에게는 질투 어린 추악한 시새움을 받았다. 어찌되었건 그 모든 것들은 엘사에게 그리 도움이 되거나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므로,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잡다한 마음들은 어디 한 구석으로 밀어넣은 채 스스로 감정들을 갈무리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도, 엘사에게 벌어진 일들은 단순한 회피와 침묵만으로는 더 이상 본인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래전 실종되었던 친구와의 재회, 끝끝내 악연으로 번져버린 애틋한 만남,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온 오랜 세월 감추어진 친하고도 긴밀한 사이였던 선생님의 끔찍한 과거, 자신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가던 친우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다섯, 여섯. 가지고 있는 모든 손가락을 꼽아봐도 셀 수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흉흉한 눈빛을 띠곤 사나운 아가리를 쩍 벌리며 엘사를 집어삼키려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잡으려던 것도 잠시, 곧 이 모든 사건의 맨 머리 위로 레나가 있었다는 걸 깨달은 날, 자신의 어머니가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자신마저 수렁에 몰아넣고 그 당신 또한 계획의 일부가 되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구렁텅이보다도 더 깊은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엘사는 자신의 몸 안의 무언가에 금이 갔다는 사실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진 담이라도 지속적으로 충격이 가해지면 균열이 생길테고 곧 얼마 버티지 못 하고 무너질 것이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사는 꽤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호흡을 고르고, 불안정한 숨을 애써 억지로라도 폐에 쑤셔넣고, 미칠듯이 뛰는 심장을 간신히 추스르고, 아직 내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며 이따금씩 경련하며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라도 힘을 주어 지면 위로 서있으려 노력했다.
이제는 원망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 들었다. 종종 무엇을 위해 그리 버티고 있는지조차 몰라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놓아버리고 포기할 순 없었다. 이미 죽어 떠나버린 어미를 원망하고 탓해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엄마, 지금 내 앞에 엄마가 없는 게 지금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엘사 본인은 레나와 닮은 구석이 지독하리만큼 없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유전자를 티끌만큼도 물려받지 못 한 것이 어쩌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다고 엘사는 가끔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거울을 단숨에 산산조각내 박살내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본인의 자식조차 기꺼이 지옥으로 밀어넣은 인간이 여전히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그곳에 존재한다면 그렇게 역겨운 일도 또 없을 터였다.
‘아, 엄마. 내가 엄마를 탓하게 된 건, 전부 엄마 탓이야…’ 자식으로서 낳아주고 키워준 모친에게 하기에는 썩 적당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어차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아 텅 빈 관을 앞에 두고 장례가 치뤄진 사람이 어떻게 산 자의 푸념을 엿들을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그의 실종된 몸뚱아리는 저 멀리 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이제는 썩고 부패하다못해 뼈만 남아버린 채 여전히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보지 못 한 건 절망적인 일인 걸까, 아니면 오히려 나은 일이었을까. 아직 죽음을 체험하기에는 한참은 어린 나이건만 엘사는 이미 몇 차례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렇게 엘사의 정신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어쩌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미친듯이 들이닥치던 파도와 같은 물결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던 둑이 무너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내일? 그도 아니면 모레? 혹은 글피?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지레짐작 해보아도 무엇 하나 정확히 단언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추측만 무성할 뿐, 댐이 결국 제 할 일을 더 이상 해내지 못 하고 맥없이 붕괴하는 순간을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엘사 또한 그랬다. 엘사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또한 예상치 못 한 때에 갑작스레 찾아왔다.
장담하건대, 센에게는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제자이자 어릴 때부터 보아온 옆집 동생이 걱정되어 안부를 물을 겸 찾아왔을 뿐이었다. 괜찮냐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강인한 녀석인 건 알지만 그래도 지치거나 괴로울 때면 얼마든지 어른한테 기대도 괜찮다고. 단지 그 말을 해주며 위로를 건네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만 센이 아직 채 자각하지 못 했던 건, 불행하게도 본인이 엘사의 삶과 영혼을 고통으로 끌어들이고 영웅의 길을 걷도록 강제로 밀어넣은 레나의 얼굴과 꼭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집으로 찾아가 문 앞에 서서 두어 번 똑똑 두들기며 자신이 왔노라 일러주면, 어릴 때부터 항상 그랬듯이 반가운 기색을 띠며 문을 열어주리라 생각했다. 어서 집 안으로 들어오라 말하며 여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대할 것이리라 생각했다. 여태껏 그래왔으니까. 자신과 엘사의 관계는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렇게 유지되리라 믿었으니까.
그렇기에 엘사의 반응은 가히 센에게도 충격을 주기에 무척이나 충분했다. 잠깐의 고요함 뒤 집문이 열렸을 때 마주한 엘사는 본인이 알던 꼬맹이가 아니었다. 마치 오래 전, 대청소 사건을 겪은 뒤 방 안에 틀어박혀 약물과 술에 의존하여 폐인처럼 살았던 과거의 자신과 다름없이 생기가 죽어버린 눈빛으로 빛바랜 낯짝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던 엘사의 표정은 센의 오랜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더없이 안정적인 기폭제였다. 본인의 어린 제자가 그러한 꼴이 되었다는 거에 된불을 맞기에도 잠시, 자신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 하고 마치 귀신을 보았다는 듯 놀란 토끼눈을 한 채 크게 숨을 들이쉬며 뒷걸음질을 하는 엘사에 센은 본능적으로 괜찮으냐 물으며 손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곧 강한 뿌리침에 의해 저지되었다. “엄마.” “엄마? 너 지금 무슨 소리를…” 난데없는 엘사의 행동에 일단 진정부터 시켜야겠다 싶어 현관을 넘어 집 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소스라치며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듯 격렬하게 거부하는 엘사의 행태에 의문감과 당혹감을 느낀 센이 강제로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채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진정해라, 엘사. 나야! 센이라고!” 혹시나 붙잡힌 손목이 아플까봐 살짝 힘을 풀곤 살살 달래듯 나머지 한 손으로는 엘사의 뺨을 쓰다듬으며 센이 부드럽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엘사의 가슴이 빠른 속도로 거칠게 부풀었다 가라앉으며 호흡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엄마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네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장례를 치뤘잖아.” 뺨에 따뜻한 체온을 가진 손이 닿자 엘사가 흠칫하며 몸을 잘게 떨었다. 설마 교회 놈들이 어떠한 수를 쓴 건가 살풋 인상을 찡그리며 고민하고 있자 엘사가 입을 우물거리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아 센이 고개를 좀 더 가까이 들이밀자 살짝 풀린 동공을 한 엘사가 넋이 나간 듯 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레나를 닮은 센의 외모는 엘사의 마음 한 구석에 오랜 시간 동안 자리잡아 깊은 상흔을 남긴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감정을 자극하여 세상 밖으로 고개를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오랜 고민 끝에 처음으로 주인의 자아를 배신하고 멋대로 튀어나간 최초의 구절이었다. “나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친구를 잃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가까운 이가 떠나는 아픔을 겪으며 살고 싶지 않았어.” 수룡에 마중물을 붓자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어오는 파다한 퀘퀘 묵은 감정들에 엘사의 입술이 그에 반응하듯 빠른 속도로 움찔거리며 속으로부터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삼라한 문장들을 내뱉었다.
“때로는 무서웠어. 때로는 괴로웠고. 때로는 허망했지. 오롯이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고 내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건만, 순전한 내 의지 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니. 이런 모순이 대체 어디 있어? 그래, 원래 삶이란 모순 덩어리지.” 책망과 증오가 서린 독설 같은 말을 경전을 읊듯 뱉어내던 엘사의 손에 저도 모르게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불규칙적으로 나타나 끊임없이 변수를 만들며 삶을 한 층 더 혼란스럽게 해. 그래도 당신만은 날 버리지 말았어야지. 날 지지해 줬어야지. 내가 벼랑 끝에 몰려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며 짧은 생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을 때에도, 여전히 곁에 남아 나를 책임져 줬어야지. 그렇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
힘주어 쥐었던 주먹을 조금씩 풀어내리자 굳게 선 손톱에 의해 손바닥에 초승달 모양의 옅은 자국이 붉게 남았다. 상처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반창에서 열기를 동반하는 아린 통증이 흐릿하게 올라왔다. “내 꿈에 나타나면 뭐해? 내, 내 마음 속에… 내 머릿속에 이따금씩 나타나면 뭐하냐고. 그게 정말로 엄마일지, 아니면 너무나 간절해서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지 어떻게 알아. 그래, 물론 엄마라면 정말로 내 안에 나타날 수도 있겠지. 인간 성수도 만들어낸 당사자시잖아!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책임하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엄마가 이미 죽은 이상, 아무리 내 꿈에 나타나고 그곳에서 나와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영원히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야.”
“당신과 나를 잇는 매개체는 대체 뭘까? 오래전 진작에 끊어져 이제는 한 때 존재했었다는 흔적만을 남기곤 사라져버린 탯줄? 끈덕지고 역겨운 고래의 힘줄과도 같이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질긴 혈연? 가족이라는 세간이 만들어낸 허상의 운명 공동체? 이제는 확실한 대답이 필요해. 더 이상의 방황은 그만 끝내고 싶어. 당신이 날 영웅으로 만들었어. 당신이 내가 테러리스트가 되도록 몰아갔고. 당신이 내가 살인자가 되도록 이끌었지. 당신이 내가 그 모든 것을 선택하고 지금의 나로 살 수 있도록 부추겼어. 당신은 뭐야? 당신은 나와 대체 어떤 관계인 거야? 가족, 혈연, 어머니, 창조자. 그 어떠한 말로도 나와 당신 사이를 확실하게 단언하여 설명할 순 없어. 그러니 대답해. 레나 잭슨. 레나! 엄마, 엄마는 대체 뭐야?”
분명 자신을 향했지만 실상은 그 너머 다른 곳을 향해 외치고 있음이 분명한 엘사의 처절한 원성에 센은 아무런 말 없이 아랫입술만 살짝씩 짓씹고는 잘게 떨리며 이따금씩 발작하는 엘사의 어깨를 흉터가 가득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고작 18년 밖에 살아오지 못 한 아이가 짊어져야 할 사명치고는 지나치게 무거웠으며 그 짐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가중될 터였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어린 아이가 제 눈 앞에서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데도 무엇 하나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이 무척이나 개탄스러웠다. 과호흡이 와 불안정하게 가슴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마치 물속에 빠진 듯 산소를 갈구하며 허덕이는 제자가 퍽 안쓰러웠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비참하게 고통받으며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을 구원해줄 운명을 타고난 영웅인 만큼 지나치게 세밀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삶의 굴레에 자신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가엾기 짝이 없는 이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자신의 어미와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걸핏하면 본인을 보고 패닉에 빠지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정신이 무너진 이 아이를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까. 여전히 제 품에 안긴 채 이따금 작은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며 소리없이 흐느끼는 엘사를 힘주어 껴안으며 센은 생각했다. 이 세상은 너에게 너무 가혹하구나. 어쩌면 스스로 영웅이 되어 싸움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던 과거의 그 순간에, 그러지 말라고 말렸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네가 선택한 길이니 책임을 지라며 방조하지 말고 진작에 만류해야 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조금 거리를 두고 그저 바라만 보았던 내 결정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된 탓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질질 늘어지며 센의 정신과 감정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탈진한 건지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몸의 떨림도 잦아들며 곧 색색거리는 숨소리만이 센의 귀에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품에서 떨어뜨려 엘사를 살펴보니 기력이 다한 건지 의식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알맞을 정도로 조용히 잠에 빠져 들어 있었다.
혹여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깰까 봐 최대한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엘사를 안아들고 침대로 향한 센은 부드러운 매트 위로 제자를 천천히 눕힌 뒤 아직 채 눈물 자국이 가시지 않아 부르튼 얼굴을 하고 있는 엘사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쓸며 물기를 닦아주었다.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런 문장도 나오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사람한테 말한다한들 딱히 전해질 거 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떤 게 옳은 것일까. 가만 생각하던 센은 결국 묵비한 채 잠든 엘사의 곁을 지켜주기로 결론 내렸다. 푹 자다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때면, 그때는 지금보다는 어느정도 진정된 상태겠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자랐지만 여전히 자신보다 한참은 어리고 미성숙한 엘사를 바라보던 센은 다정하게 손을 어루만지며 체온을 느끼다 곧 지긋이 힘주어 감싸쥐었다. 이전투구 같은 이 싸움에 뛰어들기로 선택한 건 엘사 본인이었지만, 그것이 과연 오롯이 엘사 자신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까. 선생으로서,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 아이를 봐온 어른으로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아이의 손은 예전과 다름없이 따뜻했다. 센 본인보다 뜨거운 열기가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져왔다. 어찌되었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엘사를 이 싸움에서 빼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무너지지 않고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은 되어줘야 했다. 어쩌면 데우스라는 옛이름을 버리고 센이라는 새 삶을 얻고 엘사의 옆집으로 이사 온 순간부터 그 모든 운명이 정해져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혹은 사명일지도 모른다. 내 스스로 포기하려 했던 삶을 누군가가 다시 되돌려주었으니, 이제 너 또한 그리 행동하라고. 이제 네가 되돌려줄 차례라고.
엘사, 걱정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든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