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돌아가."
너는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산 사람은 죽은 자와는 다르기에, 그들과 함께 있어서도 그들에게 말을 걸어서도 그들과 말을 섞어서도 안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다른 차이가 없을지라도 엄연히 다른 존재였기에 함부로 만날 수도 없었을 터였다. 그랬을 터인데.
소년은 악마와 만났다. 원한 만남도 아니었으며 생각하지도 않았던, 말 그대로 의도치 않았던 만남이었다. 흔히들 표현되는 악마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된 듯한 그의 모습은, 오히려 친숙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고양이와도 같은 눈동자를 지닌 세 개의 눈, 위엄을 뽐내는 듯 마냥 머리 양 쪽에 달린 뿔, 짐승처럼 날카로운 송곳니, 이미 죽어 영이 떠난 육체마냥 거무죽죽한 피부색. 아. 소년은 짧은 감탄사를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달 빛에 붉게 젖은 머리카락이 서늘한 바람에 휘날리며 소년의 시선을 쫓게 만들었다.
- 정말로 악마구나.
"어쩌다가 네가 이 곳에 오게 된 건지는 몰라도, 당장 돌아가. 너는 산 사람이니 이 곳에 존재하면 안 돼."
죽은 자들의 파티. 이미 숨이 끊어져 생명의 활동을 멈춘, 더 이상 쓸모없어져 버린 육체를 버리고 온 령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파티를 즐기는 죽은 자들의 시간. 아직 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영혼들 또한 모여있는 곳인 이 곳에 살아있는 육체를 지닌 인간이 있다는 것은 곧 수많은 맹수들 사이에서 먹잇감이 홀로 무방비하게 있는 것과도 같았다.
나와 계약해.
뭐? 소년의 입 밖에서 나온 뜻 밖에 당돌한 말에, 악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계약을 하자고? 보통은 자신을 보면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도망가고, 부정하고, 혹은 추앙하고 숭배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인간과는 다른 존재인 악마를 두려워 하지도 않고, 오히려 악마인 자신과 계약을 하자고 달려드는 인간은 흔치 않았다. 더군다나 계약 상대가 이런 꼬맹이라니. 악마는 핏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악마의 세 개의 눈동자가 날카로운 동공을 소년에게 내비쳤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자신과 계약을 하자니. 악마와의 계약은 달콤하면서도 가시덤불이나 다름없는 고통이다. 일단 한 번 계약을 맺으면 영원히 다시 되돌리거나 무를 수 없으며, 계약을 이룬 그 댓가는 계약자, 즉 인간 자신의 영혼이었다. 아무리 원대한 욕망이 있을지라도 막상 계약 조건을 들으면 망설여 질 터인데 소년은 스스로 아무런 망설임없이 자신과 계약을 하자고 말하였다. 혹시 계약 조건을 모르는 가 싶어, 악마는 소년에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그 조건은 네 영혼이야. 네가 살아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네가 죽고나면 네 영혼은 고스란히 내가 가져가게 된다는 소리지. 이 봐, 너무 선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 방금 들은 소리는 못 들은 소리로 해줄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
"너랑 계약을 맺으면 악마인 네가 내 영혼을 가져가는 거지? 그럼 됐네. 난 이미 마음 굳혔어, 돌아갈 생각도 없고. 나랑 계약해, 어... 이름을 모르겠는 눈 세 개 달린 악마."
후우, 악마는 긴 한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렇게 고집이 센 인간은 또 오랜만이군. 악마의 입장에서는 인간과의 계약을 그다지 거절할 필요나 이유는 없었다. 어찌됐든 인간의 영혼을 얻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어린 인간과의 계약이라니, 꽤나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악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계약을 맺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악마부터 시작하여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악마가 자신의 계약자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 계약자가 무엇을 위해서 계약을 하고 싶은 건지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지금껏 다양한 인간들과 여러 계약을 해왔던 그는 단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었다. 그다지 자신의 관심이나 흥밋거리는 아니었으니까. 인간 쪽에서 먼저 말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난 톰이야. 네가 죽은 후, 네 영혼을 소유할 자이고."
"난 마르코... 마르코 디에즈. 너의 계약자야."
악마는 한 쪽 무릎을 꿇어 조용히 소년의 한 쪽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붉은 머리카락이 소년의 손등을 간지럽혔다.
*
마르코의 소원은 톰을 소유하는 것. 마르코가 자신의 소원을 톰에게 말했을지 안 말했을지는 무언. 톰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이상 계약자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계약 기간은 계약자가 죽어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전까지.
그런데 소원이 톰, 즉 악마인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라면 굳이 말을 안 해도 대충 어림짐작으로 눈치채거나 자신이 직접 겪음으로써 알아챌 수는 있음. 자기와 연관이 있어도 무슨 소원을 빌든 악마는 거절을 할 수 없다.
'별나비 > 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타코) Stay (0) | 2017.06.13 |
---|---|
(스타코?) 달 (0) | 2017.05.24 |
마르코가 감기 걸린 썰 (0) | 2017.01.20 |
후회 (0) | 2017.01.15 |
빌런 마르코 썰 (0) | 2017.01.14 |